폴로 그라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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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폴로 그라운즈는 미국 뉴욕시에 위치했던 야구장으로, 1880년부터 1963년까지 여러 메이저 리그 야구팀과 미식축구팀의 홈구장으로 사용되었다. 원래는 폴로 경기장으로 건설되었으나, 여러 차례의 개조와 재건축을 거쳐 독특한 구조의 야구장으로 자리 잡았다. 뉴욕 자이언츠(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홈구장으로 가장 널리 알려졌으며, 1951년 바비 톰슨의 홈런과 1954년 윌리 메이스의 '더 캐치' 등 야구 역사에 남을 명장면들이 펼쳐졌다. 1964년 철거 후, 현재는 폴로 그라운즈 타워라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으며, 당시의 '존 T. 브러시 계단'과 조명탑 일부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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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로 그라운즈 - [경기장/극장]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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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장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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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칭 | 욕조 |
위치 | 뉴욕시 맨해튼 워싱턴 하이츠, 웨스트 155번가, 프레더릭 더글러스 대로, 할렘 강 드라이브 |
기공 | 1890년 |
개장 | 1890년 4월 19일 |
보수 | 1911년 6월 28일 |
확장 | 1923년 |
폐장 | 1963년 12월 14일 |
철거 | 1964년 4월 10일 |
소유주 | 뉴욕 자이언츠 |
운영자 | 뉴욕 자이언츠 |
표면 | 천연 잔디 |
건축가 | 헨리 B. 허츠 |
이전 명칭 | 브라더후드 파크 (폴로 그라운즈 II 인접, 1890년) 브러시 스타디움 (1911년–1919년) |
사용 팀 및 대회 | |
주요 사용 팀 | 뉴욕 메트로폴리탄스 (AA) (1883년) 뉴욕 자이언츠 (PL) (1890년) 뉴욕 자이언츠 (NL) (1891년–1957년) 뉴욕 자이언츠 (ALPF) (1894년) 뉴욕 양키스 (AL) (1913년–1922년) 뉴욕 메츠 (NL) (1962년–1963년) 뉴욕 브리클리 자이언츠 (NFL) (1921년) 뉴욕 자이언츠 (NFL) (1925년–1955년) 컬럼비아 라이온스 풋볼 (NCAA) (1900년–1922년) 뉴욕 내셔널스 (ASL) (1927년–1930년) 포드햄 램스 풋볼 (NCAA) (1928년–1950년; 1953년–1954년) 뉴욕 자이언츠 (ASL) (1930년–1932년) 뉴욕 쿠반스 (NNL) (1939년–1950년) 뉴욕 블랙 양키스 (NNL) (1931년–46년) 뉴욕 불독스 (NFL) (1949년) 뉴욕 타이탄스/제츠 (AFL) (1960년–1963년) 고담 볼 (NCAA) (1961년) |
주요 개최 대회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전 (1934년, 1942년) |
규모 및 수용 인원 | |
수용 인원 | 34,000명 (1911년) 55,000명 (1923년) |
구장 크기 | 좌익: 85m (279ft) 좌중간: 137m (450ft) 중앙: 147m (483ft) 우중간: 136m (449ft) 우익: 78m (258ft) |
2. 역사적 배경
1876년에 내셔널 리그가 결성되었고, 뉴욕에는 뉴욕 뮤추얼스가 가맹했지만 1년 만에 탈퇴했다. 이후 1880년에 뉴욕 메트로폴리탄즈가 결성되어 독립계 팀으로 활동하다가, 존 B. 데이와 짐 매트리가 맨해튼의 5번가 110번지에 있던 폴로 경기장인 '''폴로 그라운즈'''의 야구 경기 이용 허가를 받아 홈구장으로 삼았다.
메트로폴리탄즈는 흥행에 성공하여 1882년에 내셔널 리그와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 양 리그로부터 가맹 제안을 받았다. 존 B. 데이 등은 양쪽 리그에 가맹을 타진했지만, 트로이 트로잔스의 프랜차이즈권을 사들여 새로운 팀 "뉴욕 고담스"를 설립하고 1883년에 내셔널 리그에 가맹했다. 이로 인해 메트로폴리탄즈와 고담스는 같은 폴로 그라운즈를 홈구장으로 사용하게 되었고, 당시 폴로 그라운즈에는 다이아몬드 2면이 설치되어 구장을 두 개로 나눠 경기를 치렀다.
2. 1. 폴로 그라운즈 I (1880-1888)


최초의 폴로 그라운즈는 5번가와 6번가 사이의 110번가, 센트럴 파크 북동쪽 모서리 건너편에 있었다. 원래 폴로 경기를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폴로 그라운즈'라는 이름은 처음에는 공식 명칭이 아니라 단순한 경기장 설명이었다. 1880년 9월, 메트로폴리탄스는 이곳에서 경기를 시작한 최초의 프로 야구팀이었고, 1882년까지 유일한 프로팀이었다.
1883년, 메트로폴리탄스의 구단주는 내셔널 리그에 참여하는 대신, 뉴욕 고담스(현 자이언츠)를 창설하여 내셔널 리그에 진출시켰다. 메트로폴리탄스의 남은 선수들은 아메리칸 협회로 옮겨갔다. 구단주는 경기장에 두 번째 다이아몬드와 관람석을 건설하여 자이언츠와 메트로폴리탄스가 각각 사용할 동부 및 서부 구장으로 나누었다.
폴로 그라운즈 I은 1883년 아메리칸 협회 메트로폴리탄스와 내셔널 리그 고담스, 두 팀의 홈구장으로 처음 메이저 리그 야구 경기를 개최했다.[3] 그러나 서부 구장의 표면이 부실하여, 1886년 메트로폴리탄스가 스태튼 아일랜드의 세인트 조지 크리켓 그라운즈로 이전할 때까지 두 팀은 동부 구장에서 번갈아 경기를 치렀다.
초창기 자이언츠의 로저 코너는 우익수 담장을 넘어 112번가로 홈런을 날렸는데, 이는 베이브 루스가 1921년에 깰 때까지 통산 홈런 기록이었다.
최초의 폴로 그라운즈는 프로 야구뿐만 아니라 대학 야구와 미식축구 경기에도 자주 사용되었다. 1882년 5월 30일 현충일에는 예일 대학교와 프린스턴 대학교 간의 야구 경기가 열렸고,[4] 1883년과 1887년 추수감사절에는 예일과 하버드의 미식축구 경기가 열렸다.[5]
2. 2. 폴로 그라운즈 II (1889-1890) / 맨해튼 필드 (1891-1942)
1889년 뉴욕시는 맨해튼 북부로 도로망을 확장하는 과정에 있었다. 확장된 서 111번가 계획은 폴로 그라운즈를 관통했다. 시 공무원들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새로운 거리를 만들기 위해 울타리를 자르기 시작했다고 한다.[1] 자이언츠가 전년도에 내셔널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월드 시리즈에서도 우승하면서, 이 이전에 대한 반대 여론이 도시 내에서 상당했다.[1] 심지어 주 의회에서 자이언츠에게 공원을 유지할 수 있는 변수를 허용하는 법안까지 통과되었다.[1] 그러나 "자치"를 약속하며 선거 운동을 했던 데이비드 B. 힐 주지사는 공원 강제 철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시 정부의 의지를 존중해야 한다는 이유로 거부했다.[1] 공원을 잃게 된 자이언츠는 급히 대체 부지를 찾아야 했다.[1]결국 자이언츠는 8번가 155번지에 있는 새로운 부지로 이동하여 그곳을 폴로 그라운즈라고 불렀다.[5] 이 새로운 구장은 실제로는 폴로 경기장이 아니었고, 나중에 맨해튼 필드(Manhattan Field)라고 불리며 축구나 육상 경기장으로 사용되었다.[5]
2. 3. 폴로 그라운즈 III (1890-1911) / 브라더후드 파크 (1890)
1890년, 플레이어스 리그의 뉴욕 자이언츠는 폴로 그라운즈 II 옆에 브라더후드 파크를 건설했다.[16] 플레이어스 리그는 메이저 리그 야구 최초의 노조인 프로 야구 선수 브라더후드의 작품이었다. 내셔널 리그 구단주로부터 양보를 얻는 데 실패한 브라더후드는 1890년에 자체 리그를 설립했다. 플레이어스 리그 자이언츠는 코건 할로우 북쪽에 브라더후드 파크를 건설했는데, 이는 철도 차량 기지와 절벽으로 둘러싸인 폴로 그라운즈 II 옆이었다. 브라더후드 파크는 1890년 4월 19일에 첫 경기를 개최했는데, 같은 날 내셔널 리그의 자이언츠도 시즌 첫 홈 경기를 치렀다.[16] 1890년 한 시즌 동안 두 버전의 자이언츠는 이웃으로 지냈다. 같은 날 경기가 열릴 때, 상단 관중석의 팬들은 서로의 경기를 볼 수 있었고, 한 구장에서 홈런 볼이 다른 팀의 경기장으로 날아갈 수도 있었다.플레이어스 리그가 1년 만에 해체되자,[17] 선수 대부분은 내셔널 리그의 자이언츠로 복귀했다. 내셔널 리그 자이언츠는 1891년 시즌부터 브라더후드 파크를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구장명을 폴로 그라운즈 III로 변경했다. 이후 목조 스탠드를 증설해 나갔다.
2. 4. 폴로 그라운즈 IV (1911-1963) / 브러시 스타디움 (1911-1919)
1911년 4월 14일 금요일 이른 아침,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로 폴로 그라운즈 III의 목재 관중석이 대부분 소실되고 강철 기둥만 남았다. 자이언츠 구단주 존 T. 브러시는 콘크리트와 강철로 구장을 재건하기로 결정하고, 재건축 기간 동안 힐탑 파크를 임대했다.[3]2개월 반 만인 1911년 6월 28일, 경기장이 재개장되었다. 이 새로운 구조는 메이저 리그에서 9번째, 내셔널 리그에서 4번째 콘크리트-강철 경기장이었다. 시즌 중에도 미완성 좌석 구역의 재건은 계속되었다. 새로운 구조는 이전처럼 좌익 필드 코너에서 홈 플레이트를 거쳐 우익 필드 코너까지 반원 형태로 뻗어 있었지만, 깊숙한 우중간까지 확장되었다. 남아있는 나무 관람석은 기본적으로 그대로 유지되었으며, 새로운 내화 구조 사이의 양쪽에 틈이 있었다.
자이언츠는 1911년, 1912년, 1913년에 내셔널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재건된 구장과 함께 부활했다. 구단은 구단주 존 T. 브러시를 기리기 위해 새로운 구조물을 '''브러시 스타디움'''으로 명명했지만, 이 이름은 1910년대 후반에 사라졌다. 1923년 시즌 중, 남아있던 낡은 관람석은 철거되고 영구적인 2층 관중석이 경기장 대부분을 둘러쌌으며, 중견수 지역에는 새로운 관람석과 클럽하우스가 건설되었다. 이로써 경기장은 친숙한 말굽 또는 욕조 모양을 갖게 되었고, "더 배스텁"이라는 별명도 얻게 되었다.[18]
뉴욕 양키스는 힐탑 파크 임대 계약이 만료된 후 1913년부터 1922년까지 폴로 그라운즈를 자이언츠로부터 임대했다. 1922년 시즌 후, 양키스는 폴로 그라운즈에서 할렘 강 건너편에 양키 스타디움을 건설했는데, 이는 자이언츠가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야구장을 확장하여 비슷한 수용 능력에 도달하도록 자극했다.
3. 주요 특징
폴로 그라운즈는 원래 폴로 경기용으로 설계되어 특이한 형태를 띠었다. 센터는 매우 길고(우중간 약 137.16m, 센터 약 144.78m), 양쪽은 짧아(좌익수 약 85.04m, 우익수 약 78.64m) 팝 플라이도 폴 근처라면 홈런이 되곤 했다. 관람석은 전형적인 말굽형으로, 미식축구에는 적합했지만, 야구에는 왜곡된 형태였다. 1923년 외야석까지 지붕을 건설하면서 ≪욕조≫와 같은 형태가 되었고, 이는 폴로 그라운즈의 별명이 되었다.
초창기에는 외야 펜스 없이 로프가 쳐져 있었고, 상류층 사람들은 마차를 세워 경기를 관전하기도 했다. 이러한 외야의 오픈 필드는 1910년경에는 사라졌다.
3. 1. 독특한 외야 구조

폴로 그라운즈는 좌우익 펜스까지의 거리는 짧지만, 중견수 펜스까지의 거리는 매우 긴 독특한 구조였다. 좌익선까지는 약 85.04m, 우익선까지는 약 78.64m로 매우 짧았지만, 좌익 필드에는 약 6.40m 오버행(돌출부)이 있어 뜬공을 가로막아 홈런으로 만들기도 했다.[18] 반면, 좌중간과 우중간 가장 깊은 곳은 450피트였고, 중견수 클럽하우스 기저부는 홈 플레이트에서 약 147.22m 떨어져 있었다.[18] 이러한 구조는 폴로 그라운즈만의 독특한 경기 양상을 만들어냈다.
1954년 월드 시리즈에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빅 워츠를 상대로 윌리 메이스가 기록한 더 캐치는 중견수 통로 바로 오른쪽 관중석 벽 상단에 있는 금속 스크린인 "타자 눈" 바로 앞에서 일어났다.[18] 이는 다른 야구장에서는 홈런이었을 타구였다. 불펜은 좌중간과 우중간 갭 안에 있었고,[18] 외야는 내야보다 낮아 덕아웃에서는 외야수의 상반신만 보였다.[18]

우익 파울 폴은 홈 플레이트에서 약 78.64m 떨어져 메이저 리그에서 가장 짧은 펜스 중 하나였다.[18] 20세기 초, 펜스를 간신히 넘기는 홈런은 미국 내 동아시아인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유래한 중국인 홈런이라고 불렸는데, 1940년대까지 폴로 그라운즈의 짧은 우익 펜스와 주로 연관되었다.[56] 멜 오트는 통산 511홈런 중 상당수를 홈구장 우익 방향으로 기록해 과소평가되기도 했지만, 리그의 다른 타자들이 왜 그렇게 치지 못하는지 반문했다.[56]
바비 톰슨의 1951년 내셔널 리그 우승을 결정지은 "세상을 뒤흔든 한 방"은 좌익 펜스를 넘겼다.[18] 1954년 월드 시리즈 1차전 10회말, 더스티 로즈가 친 3점 끝내기 홈런은 펜스를 간신히 넘겨 데이브 포프의 글러브 위로 날아갔다.[57] 알 로페즈 감독은 이 경기장의 독특한 크기가 자이언츠 승리의 원인이라고 말했다.[57]
폴로 그라운즈의 필드는 센터까지가 매우 길고(우중간 450피트, 센터의 가장 깊은 곳까지 475피트), 양쪽 날개가 짧은(좌익수 279피트, 우익수 258피트) 특수한 형태였다.[18]
3. 2. "세상에 울려 퍼진 한 방"과 "더 캐치"
1951년 10월 3일, 뉴욕 자이언츠와 브루클린 다저스 간의 내셔널 리그 우승 플레이오프에서 바비 톰슨이 친 "세상에 울려 퍼진 한 방" 끝내기 홈런은 폴로 그라운즈의 짧은 좌익 펜스를 넘어갔다.[18]1954년 월드 시리즈 1차전에서 자이언츠 외야수 윌리 메이스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빅 워츠가 깊숙한 센터 필드로 친 플라이볼을 상징적인 캐치로 잡아냈다.[18] NBC 텔레비전 스포츠 캐스터 잭 브릭하우스의 말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에게 착시 현상처럼 보였을 것"이며, 이 캐치는 그 시리즈의 흐름을 자이언츠에게 유리하게 만들었다. 이 경기는 폴로 그라운드의 깊은 중견수 덕분에 나온 명장면이었다.
같은 1954년 월드 시리즈 1차전 10회말, 몬테 어빈을 대타로 들어선 더스티 로즈가 친 3점 끝내기 홈런은 펜스를 간신히 넘겼고, 데이브 포프의 뻗은 글러브 위로 날아갔다.[57] 압도적인 우세를 보였던 인디언스의 감독 알 로페즈는 이 경기장의 독특한 크기가 자이언츠의 놀라운 시리즈 1차전 승리의 원인이라고 말했다.[57]
3. 3. 불펜 위치
1954년 월드 시리즈에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빅 워츠를 상대로 윌리 메이스가 기록한 더 캐치는 중견수 통로 바로 오른쪽에 있는 관중석 벽 상단의 금속 스크린인 "타자 눈" 바로 앞에서 일어났다. 이는 당시 다른 여러 야구장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대부분의 현대 야구장에서도 홈런이었을 것이다. 폴로 그라운즈의 불펜은 좌중간 및 우중간 갭 안에 있었다.[18] 외야는 내야에서 아래로 경사져 있었고, 덕아웃에 있는 사람들은 외야수들의 상반신만 볼 수 있었다.홈팀과 원정팀 불펜은 외야 경고 트랙에 위치해 있었으며, 각각 우중간과 좌중간 파워 앨리에 위치해 있었고, 홈 플레이트에서 약 약 137.16m 떨어져 있었다.[58] 벤치에 앉은 사람들은 차양,[59] 캐노피,[60] 또는 불펜의 상단으로 다양하게 묘사된 비와 햇빛으로부터의 보호를 받았다.
4. 다양한 스포츠 경기 개최
폴로 그라운즈는 야구 경기뿐만 아니라 다양한 스포츠 경기가 열린 다목적 경기장이었다. 1882년 5월 30일 현충일에는 예일 대학교와 프린스턴 대학교 간의 야구 경기가 열렸으며,[4] 1883년과 1887년 11월에는 예일과 하버드가 추수감사절 미식축구 경기를 치렀다.[5]
1890년에는 메이저 리그 야구 최초의 노조인 프로 야구 선수 브라더후드가 플레이어스 리그를 설립하고, 뉴욕 자이언츠 프랜차이즈를 창설하여 폴로 그라운즈 III(당시 브라더후드 파크)에서 경기를 치렀다. 같은 해, 내셔널 리그의 뉴욕 자이언츠와 플레이어스 리그의 뉴욕 자이언츠가 이웃하여 경기를 치렀는데, 같은 날 경기가 열리면 상단 관중석의 팬들이 서로의 경기를 볼 수 있었고, 한 구장에서 홈런 볼이 다른 팀의 경기장으로 날아가기도 했다.[16]
뉴욕 양키스는 1913년부터 1922년까지 폴로 그라운즈를 임대하여 사용했으며, 1920년 8월 16일에는 인디언스의 레이 채프먼이 칼 메이즈 투수의 공에 맞아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1934년과 1942년에는 올스타전이 개최되었고, 1954년 월드 시리즈 1차전에서는 윌리 메이스의 "더 캐치"라는 역사적인 명장면이 나왔다.[18]
이외에도 폴로 그라운즈에서는 권투, 축구, 게일식 축구 등 다양한 스포츠 경기가 열렸다.
4. 1. 미식축구
NFL의 뉴욕 자이언츠와 AFL의 뉴욕 타이탄스/제츠 모두 폴로 그라운즈를 홈 구장으로 사용했다. 자이언츠는 1956년에 양키 스타디움으로 이전했고, 제츠는 1964년 셰이 스타디움으로 이전했다.[32]미식축구 자이언츠는 폴로 그라운즈에서 1934년, 1938년, 1944년, 1946년 NFL 챔피언십 게임을 개최했다. 1936년 NFL 챔피언십 게임은 원래 펜웨이 파크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보스턴 레드스킨스(현 워싱턴 커맨더스) 구단주와 그린베이 패커스, NFL의 합의로 폴로 그라운즈로 옮겨졌다.[33]
폴로 그라운즈는 컬럼비아 대학교와 예일 대학교 등 대학 미식축구 경기도 자주 열렸다. 특히 1883년과 1887년에는 추수감사절 미식축구 경기가 열렸다.[5] 또한, 포덤 대학교와 육군사관학교 경기도 열렸으며, 1924년 노트르담 대학교가 육군을 상대로 승리한 경기는 그랜트랜드 라이스가 포 호스맨이라는 유명한 기사를 쓰게 된 계기가 되었다. 1910년대와 1920년대에는 여러 차례의 육군-해군 미식축구 경기가 열리기도 했다.

4. 2. 축구
1926년, 오스트리아 하코아 빈이 폴로 그라운즈에서 경기를 가졌을 때 46,000명의 관중이 몰려들어 당시 미국 축구 경기 최다 관중 기록을 세웠다.[34] 1960년대 초까지 다양한 국제 축구 경기가 열렸다.1894년, 메이저 야구 클럽 구단주들은 야구 비시즌 동안 경기장을 채우기 위해 미국 프로 축구 리그를 결성했다. 뉴욕 자이언츠 축구팀은 6경기에서 2승을 거두며 리그 3위에 올랐지만, 시즌 중반에 중단되었다.[38][39]
1927년, 클루브 나시오날 데 푸트볼은 북미 투어에서 3경기를 치렀다.[35][36][37] 1935년과 1939년에는 스코틀랜드 국가대표팀이 폴로 그라운즈에서 경기를 가졌다.[34]
1948년 미국은 독립 이후 처음으로 폴로 그라운즈에서 이스라엘을 3-1로 이겼다.[34] 1950년에는 터키의 베식타스 JK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경기를 가졌다.[34] 1960년에는 잉글랜드의 버밍엄 시티가 스코틀랜드의 서드 라나크와 경기를 치렀고, 방구가 킬마녹 FC를 꺾고 초대 인터내셔널 사커 리그 결승전에서 우승했다.[34] 1961년 인터내셔널 사커 리그에서는 샴록 로버스와 레드 스타 베오그라드, 두클라 프라하와 에버턴의 경기가 열렸다.[34]
국내 리그 축구에서 폴로 그라운즈는 1928년 아메리칸 사커 리그의 뉴욕 내셔널스의 홈 구장이었다.
4. 3. 복싱
폴로 그라운즈에서는 여러 유명한 권투 경기가 열렸다. 1923년에는 잭 뎀프시와 루이스 앤젤 피르포의 헤비급 챔피언십 경기인 경기가 열렸고,[18] 1960년 6월 20일에는 세계 헤비급 챔피언 잉게마르 요한손과 전 챔피언 플로이드 패터슨 간의 재대결이 있었다.[18] 이 경기에서 패터슨은 요한손을 꺾고 챔피언십을 되찾은 최초의 헤비급 복서가 되었다.[18] 요한손은 그 전 해 양키 스타디움에서 패터슨에게서 타이틀을 빼앗았었다.[18]4. 4. 게일식 축구
뉴욕 GAA는 가끔 폴로 그라운즈에서 주요 게일 게임 경기를 치렀다. 게일 풋볼의 1947년 올-아일랜드 결승전은 캐번과 케리 간의 경기로, 그 해 9월 14일 폴로 그라운즈에서 열렸다. 아일랜드 밖에서 열린 유일한 올-아일랜드 시니어 결승전으로, 게일 운동 협회(GAA)는 대기근 최악의 해였던 "블랙 '47"을 기념하였다. 뉴욕은 아일랜드계 미국인의 중심지로 선택되었으며, 많은 이들이 기근으로 망명한 이들의 후손이었다. 경기는 캐번의 승리로 끝났으며, 라디오 에이린 해설자 마이클 오헤어가 경기가 늦게까지 진행되어 방송 라인을 연장해 달라고 성공적으로 요청한 것으로 기억된다.[40] 폴로 그라운즈에서 열린 마지막 게일 게임 경기는 1958년 6월 1일로, 캐번 팀이 뉴욕을 게일 풋볼에서 꺾었다.5. 철거와 유산
1957년 8월 19일, 뉴욕 자이언츠는 74년간의 뉴욕 프로 야구 역사를 뒤로하고 샌프란시스코로 이전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1956년 시즌의 흥행 부진과 더불어, 미식축구 자이언츠가 1955년 NFL 시즌 이후 양키 스타디움으로 떠나면서 임대료 수입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자이언츠 구단주 호레이스 스톤햄은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었고, 경기장 유지 보수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 관리 직원을 해고해야 했다.[3] 또한, 폴로 그라운즈는 모델 T가 출시된 지 2년 후에 문을 열었기 때문에 주차 공간이 부족했고, 경기장 설계상 관중들이 센터 필드 게이트를 통해 나가야 해서 혼잡을 야기했다.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스톤햄은 자이언츠를 브롱크스의 양키스 임차인으로 두거나, 시가 소유할 예정이었던 새 경기장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고려했으나 모두 무산되었다.[3] 결국 자이언츠는 오랜 라이벌인 다저스를 따라 서부 해안으로 이전하게 되었고, 폴로 그라운즈에서 5번의 월드 시리즈 우승을 기록했다.
이후 폴로 그라운즈는 약 3년 동안 비어 있다가, 1960년에 새로 창단된 뉴욕 타이탄스(현재의 뉴욕 제츠)가 사용하기 시작했고, 1962년에는 뉴욕 메츠가 셰이 스타디움이 건설되는 동안 임시 홈구장으로 사용했다. 1961년, 뉴욕시는 공용 수용을 통해 부지를 확보하고 고층 주택 단지를 건설하기로 결정했으며, 부지 소유주였던 쿠건 가문과의 법정 다툼 끝에 1967년 승소했다.[26]
1963년 9월 18일,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필리스가 5-1로 승리했다.[27] 10월 12일에는 로베르토 클레멘테가 감독을 맡은 내셔널 리그 라틴 아메리카 올스타팀이 헥토르 로페스의 아메리칸 리그 올스타팀을 꺾고 마지막 시범 경기를 치렀다.[28][29] 폴로 그라운즈에서 마지막으로 열린 스포츠 경기는 1963년 12월 14일, 뉴욕 제츠(전 뉴욕 타이탄스)와 버팔로 빌스의 경기로, 빌스가 19-10으로 승리했다.
1964년 4월 10일, 폴로 그라운즈는 4년 전 에베츠 필드 철거에 사용되었던 것과 같은 야구공 모양의 쇠공을 사용하여 철거되기 시작했다.[1][2] 철거반은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고 역사적인 경기장에 경의를 표하며 해체 작업을 진행했고, 60명의 작업반이 4개월 반에 걸쳐 경기장을 평평하게 만들었다.
5. 1. 폴로 그라운즈 타워
현재 이 부지에는 1968년에 개장하여 뉴욕시 주택청에서 관리하는 공공 주택 단지인 폴로 그라운즈 타워가 들어서 있다.[30]5. 2. 존 T. 브러시 계단
폴로 그라운즈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은 존 T. 브러시 계단으로, 1913년 8월에 개장하여 경기장의 북동쪽 구석에 있는 쿠건스 블러프 절벽에서 스피드웨이(이후 할렘 리버 드라이브웨이)까지 이어졌다.[18] 이 계단은 2014년에 복원되어 일반에 공개되었다.[18]5. 3. 폴로 그라운즈의 조명탑
Polo Grounds영어의 조명탑은 현재 애리조나 주립 대학교 야구장이 있는 피닉스 시립 경기장에 설치되어 사용되고 있다. 1964년 경기장이 건설되었을 때, 당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구단주였던 호레이스 스톤햄은 폴로 그라운즈의 원래 조명탑을 그곳으로 옮겨 설치했다. 자이언츠는 1947년부터 이 경기장의 전신 구장에서 스프링 트레이닝을 진행했으며, 1964년 스프링 트레이닝 기간 동안 새로운 야구장에서 경기를 치렀다. 조명탑은 현재까지 그 자리에 남아 있다.[67]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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